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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독재정치의 아픈 기억때문에 우리에게 권위라는 말은 참 부정적인 단어다. 그걸 가치중립적으로, 또는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건 아마 수십, 수백년이 걸리는 일이겠지. 그러니 차선으로라도 그 '권위'를 해체하고 국민에게 권위를 돌려줌으로서 궁극적으로 그 국민의 권위를 공유하고자 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건 정말 많이 고민하고 생각한 끝에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진정성을 가진 리더를, 다시 언제 만날 수 있을까. 덥고 넓고 사람 많은 곳에 혼자 가서 울다가 정말 큰일 날 것 같아서 몸사리느라 영결식에는 가지 않았다. 텔레비전 중계를 보면서 그냥 혼자 울었다. 원래 안 울었었는데 어제부터 울었다. 아, 정말 큰 별이 지는구나 싶어서.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건 당연한 거니까 거부할 생각은 없다. 이왕에 이용할 거 멋지게 이용해라. 이왕에 이용당할 거 확실하게 힘써보자. 당신은 그만큼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동안 너무 무뎠다. 나는 무뎠다. 새파랗게 어린 감성만 살아서는 무디기까지 했다. 88년생. 민주화 이후에 태어나고 자란 세대. 그래서 나는 독재, 억압, 폭력, 기득권과 같은 단어들을 실감하지 못했다. 광주나 419, 서울의봄같은 것의 영상을 보면서는 전율하고 찔끔 눈물을 흘리기는 다반사였지만 그뿐, 그 전율을 더 이어갈 줄은 몰랐다. 정치학을 2년이나 배우고 나니까 이제야 알겠다. 구조. 체제. 메커니즘. 헤게모니. 미일중러에 둘러싸여 아무리 발버둥쳐도 상대적 약소국에 지나지 않는 이 나라는, 국가지도자의 의지로 변할 수 있는 것 보다는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것들이 더 많다. 이것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대추리와 FTA와 이라크 파병과 같은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정적으로 발끈하고 나서지는 않았을텐데. 사람들이 모두 정치학을 어느 정도 배워둔다면, 국제정세를 어느 정도는 읽어낼 수 있었을텐데. 그는 그렇게 혼자가 되지 않았을텐데.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알아서 꼭 한번 찾아가보고 싶었다. 그때 그러그러했던 것, 이러이러해서 그랬던 거죠? 하고 툭툭 거시적으로도 미시적으로도 짚어내서 허허 이 아가씨 참 영특하구만, 대견하네 하는 소리 들어보고 싶었다. 친가와 외가 모두 할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집안문제로 친척어르신들과 왕래도 거의 없는지라 그런 나이 지극한 어른에 대한 왠지 모를 어리광과 오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정말 공부 많이 한 다음에 꼭 찾아가보려고 했는데. 이미 늦었지만, 그러나 그는 계기가 된다. 다시는 이렇게 허망하게 놓치지 말아야지, 하는.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준비되어 있어야지, 하는. 정국은 더 복잡하게 흘러갈 것이다. 그를 등에 업으려는 세력도, 그를 무덤 속에 처넣으려는 세력도. 어느 누가 득을 보고 해를 입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히 현 정부는 정말 최선의 결과라고 해봐야 본전정도 밖에 못 챙길 거야. 정치는 정말 정치를 아는 사람이 해야 한다. 공부가 괜히 있는 게 아니야. 아무리 경제와 돈이 우선시되는 시대라고 해도 경제와 정치와 문화는 서로 주거니받거니 하는 관계라, 그 메커니즘을 꿰뚫어보지 못한다면 철저히 이용당할 것이다. 북한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미국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중국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을 밀고 당길 줄 알아야 한다. 어느 하나 뻔한 나라가 없고 만만한 나라가 없어. 그들의 제도, 전통, 역사, 사고를 알아야 어떤 정책이 나올지 가늠할 수 있고 국제구조와 지역구조를 알아야 그들의 선택지를 예상할 수 있다. 자연과학과 같은 명쾌한 설명력과 보편성을 가진 이론 또는 법칙을 도출하기 위해 사회과학은 무던히도 애를 써왔다. 그러나 연구대상 자체가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고, 그 인간이 만들어내는 사회현상이니 지금껏 사회과학자들은 열심히 삽질을 해왔다. 정치과학자들도 마찬가지. 그러나 그 삽질이 어느 정도는 의미가 있어서, 현재는 그것들을 모조리 쟁여서 간편성을 희생하고 설명력과 보편성이라도 확보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국제정치학 또는 국제관계학에서는 세계체제 차원과 국가 차원과 국가지도자 차원의 분석범위를 모두 고려한다. 국제정치구조와 국내정치를 모두 고려한다. 뿐만 아니라 국제경제와 국내경제도 모두 셈에 넣는다. 고려할 것이 너무 많으나, 그렇게 해야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다 해야 한다. 이념이나 이상에만 사로잡혀서는 놓칠 수있는 것이 너무 많으니까, 명분은 정말 말 그대로 명분으로 두고 진짜 실용주의 좀 해보란 말이다. 방학하거든 출국 전에 봉하마을 꼭 다녀와야지.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니까, 할 수 있을 때 다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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